주여! 우리 모두를 용서하여 주소서

주여! 우리들의 잘못으로 나라가 이지경이 되었나이다. 선장과 선원들이 허둥대며 자기들만 도망친 것도, 또 허둥대던 관계자들의 잘못도 다 우리의 잘못입니다. 우리 모두는 경쟁만하고, 소유만 보고, 성장만 보았지 인간을 보는 것을 안 배웠습니다. 주여! 우리들이 먼저 변하지 않고 저들에게 주님의 증인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주여! 기독교가 18%가 되는데 소금과 빛의 역활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구석 구석 썩고 있지만 우리는 소금으로서 역활보다는 적당히 타협하고, 나의 유익이 되면 눈감아 주고, 저들에게 주님의 공의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주여! 그렇게 사회는 어두움의 영들이 덮어가는데도 우리들은 빛으로서의 역활을 감당하는데 주저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빛의 자녀로서 삶의 본이 못되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가치관과 의식이 변하여야하는 것에 우리는 본이 못되었습니다. 주여!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저들을 다 찬 바다에 잠기게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하나님 앞에 통회하며 각성하게 하소서! 주여! 우리 죄를 용서하소서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아픕니다. 주여! 이제 다시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의 가치관을 하나님에게 두고, 진리에 두고, 공의에 두게 하소서! 오 가슴을 칠일이여!

그렇게 우리는 행복하였습니다

화요일 아침 교회에 출석하며 조용한 복도에서서 잠시 멍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잠시 서 있는데 제 귀에 환청이 들리는 듯 했고, 집사님들이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환상으로 보이는 것같았습니다. 저는 지난 주 며칠 동안 행복했었거든요 왜냐구요 교회에 항상 웃음소리와 음식 만드는 소리가 교회에 가득차 있었거든요 우리는 지난 몇일 동안 음식을 장만하고, 거라지 물건들을 실어오고, 토요일에 아주 줄거운 거룩한 장터를 열었습니다. 그 날은 우리 성도님들이나 바자회에 참석하여 반찬이나, 음식을 나누는 사람들도 모두가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후 성령 받은 초대교인들이 물건을 서로 나누며 함께 거룩한 복음의 사명을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바자회에서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더 나아가서 천국에 가서 살고 있을 우리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이렇게 땀과 눈물들이 모여 이루어진 선교헌금들은 이제 멀리 필리핀 아에따 부족의 교회가 다시 세워지고 고구마 농장들이 들어 설 것입니다 정말 며칠동안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합니다.

잘라진 가지를 보며

제 서재 책상에는 어느 분이 사준 화분 하나가 있습니다 그 나무 이름은 모르지만 분재 나무인데 사계절 늘 책상위에 푸르름을 선사해주는 그 나무에 애착이 가서 정성껏 물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가지에 곁가지가 나오더니 가냘픈 가지로 빠른 속도로 자랐습니다 그 나무의 전체 모양에 밸런스가 맞지 않아서 저는 가위로 그 가지를 잘랐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에 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나무가 사람에게 뽑혀와 자라지만 않았어도 자연에서 그 아름다운 햇살과 신선한 공기와 주위에 많은 친구들과 함께 숲을 이루고 살았을 그 행복을 빼았아 버렸고, 더군다나 가지까지 인간들 멋대로 잘라지는 아픔을 겪지 않았을텐데 이런 마음이 드니 잘라진 가지가 애처로워 물컵에 물과 흙을 넣고 그 잘라진 가지 중에 아주 작은 가지 하나를 심어 놨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새벽기도 끝나고 보니 그 아주 작은 가지는 시들해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 여리디 여린 나뭇잎을 만지며'미안하다' 하는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주어진 진리 안에 자유는 허락되었지만 내 생각과 내 경험과 내 아집과 내 고정관념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행복을 내 멋대로 잘라 버리고 내 생각에 맞춰 그것을 자기 인생이라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분재같이 작고 작아져 버린 자기의 아집의 틀에서 그것이 인생이라고 고집하며 살고

청자두 꽃은 떨어져 가는데

우리 집의 봄의 전령사는 언제나 청자두 꽃들이다. 벚꽃처럼 화사함은 떨어지지만 작은 꽃잎들이 손가락 하나 들어갈 수 없을만큼 꽃잎들이 촘촘히 붙어 있는 것이 나름 너무 아름답다.. 그런데 이제 그 꽃잎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눈가루처럼 뒤뜰 잔디를 덮는다. 그리고 아직도 아쉬운 듯 남아 있는 꽃들 사이로 아주 연초록의 잎의 새순들이 삐집고 나오고 있다. 그런면서 생뚱맞게 고난주간에 고통 당하였던 주님의 모습이 별안간 오버랩되는 것일까? 잎들이 먼저 와서 자기의 역활을 하고 나면 이제 잎들이 나고 열매들을 맺혀 가게 되는 과정이 갈보리 언덕에서 외롭게 져야만 했던 피묻은 꽃잎이 된 주님의 희생이 수많은 생명들이 태어나는 진리를 잠깐 비교해보았는가보다. 언젠가는 받드시 나도 사역을 마치는 날 꽃잎들이 지는 것처럼 또다른 생명이 싹트고 열매는 맺혀지겠지 하는 위도로 온다. 우리 부모들이 가는 길도 마찬가지이다.그렇게 우리의 청춘들이 지나고 나면 자녀들은 태어났고 자라고 어들이 되어 인생의 열매들을 맺혀 가는 것이 같지 않은가? 마치 연어가 가장 안전하고 좋은 환경에서 알들을 낳고 부화할 때까지 보호하다 치어들이 스스로 살아갈 때가 되면 자기의 삶을 마감하는 연어의 희생처럼 모든 것들은 다 그렇게 돌아간다. 밤에 잠자리에 들기전에 뒷방범등에 투명하게 피어 있던 꽃들은 시들지만 그렇게 봄이 우리에게 아

같은 물을 주었는데

저는 요즘 안하던 짓을 합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강단에서 놓여 있던' 양란'을 다시 꽃피우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네 그루중에 하나가 자색 꽃을 아름답게 피운 것입니다. 너무 신기했습니다. 같은 정성과 같은 조건과, 같은 양의 물을 주었는데 어째서 한그루만 그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웠을까? 그러면서 저는 크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고, 같은 자리에서 같은 본문에 같은 내용의 설교를 하여도 어떤 이는 구원을 받고, 은혜를 받아 하나님이 귀하게 쓰임받는 충성스런 일꾼이 되기고 하고,어떤 이는 반대로 구원을 못받고, 혹 받았어도 그 믿음이 자라지를 못하여 하나님의 근심이 되기도 하는 것은 이 '란'과 같은 원리이구나 하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성도도 신앙의 꽃을 늦게 피울 수도 있고, 늦게 열매 맺을 수도 있는 것을 내 마음대로 안된다고 해서 초조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더불어 깨달았습니다. 내가 할 일을 최선을 다해 말씀을 증거하고, 저들을 위해 중보기도하여 꽃피우는 그날을 기다리렵니다. "그런즉 나는 심었고, 아블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셧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된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7-8)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은 의롭고 대단할 때 사랑하신 것이 아니며 우리가 하나님 사랑을 받기에 합당치 않고, 하나님 앞에 쓸모없을 때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셨습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그 사랑은 무조건적 사랑이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어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등 돌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며, 내 고집대로 살며,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은 나를 내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시고 나를 무조건 받아 주신 사랑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되인 되었을 때 원수 된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이든 죄를 인정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죄인인 인류는 심판받아야 했고, 멸망 받아야했고, 벌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죄를 해결하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의 죄를 해결하시는 방법이란 죄인의 죄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구제 불능의 죄인들을 위해 그의 독생자를 내놓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 값을 독생자를 통해 지불하셨던 것입니다. 그래 하나님은

작은 이웃

우리 집에는 나무와 담장을 넘나드는 다람쥐 몇마리가 있다. 올해에는 작은 체구의 다람쥐가 두마리 더 늘었다. 앛아 아침 밥을 먹을 때면 열심히 다니는 다람쥐가 귀여워 껍질이 있는 땅콩 몇 알을 문을 열고 주어 보았다. 한 두 동안은 경계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땅콩을 가져 가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두손(?)으로 땅콩을 잡아 입에 넣고는 쏜살같이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간다.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집사람이 가꾸는 화분 흙을 파고 그 속에다 땅콩을 묻는 거였다. 집사람에게 단단히 미움을 받아 나보고 땅콩을 주지 말 것을 권유하였다. 그렇게 몇 달을 주다 보니 아침 8시경이면 뒷뜰로 나가는 유리 문에 와서 서성거린다 심지어 두발을 들고 앞다리를 모으고 서는 모습이 얼마나 신기하고 귀여운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정들무렵 요르단 동생네 집을 다녀 오느라 2주 동안 집을 비웠고 다녀 와서도 정신이 없어 신경을 못섰더니 그렇게 날마다 찾아와 재롱(?)을 부디던 놈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좀 섭섭한 마음도 들고 미안한 마음도 들어 다시 땅콩을 놓고 싶은데 아내와 타협하기를 겨울 비내리고 먹이들이 흔하지 않을 때 다시 주기로 하였다. 오늘도 담장과 나무들을 넘나드는 다람쥐들이 가끔 유리문에 와 서 있다 가곤한다. 이제 그저 무심히 보던 야생동물이 아닌 작은 이웃과 같이 친숙함

저들의 것입니다

우리집은 작지만 뒤에 사과나무와, 포도나무와, 집사람이 텃밭을 만들어서 방울토마토 심었습니다. 그런데 저희집에 단골손님인 다람쥐와 새들이 그 과일과 토마토를 자기들 것인양 먹고 있습니다. 사과는 농약을 주지 않아 모양이 이쁘지 않어서 별로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청포도가 실하게 익어갈 때를 기다리던 저희들은 포도 송이를 보려고 갔다가 적잖이 실망했습니다. 그것은 이미 한 알도 남지 않은 것입니다. 방울토마토도 얼마나 열심히 그것도 잘 익은 것만 골라 포식들을 합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들은 함께 공유하게 하셨는데 언제부터인지 인간들은 자기들이 심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몸에 좋은 것이라면 식량이 아닌데고 자연에 나는 것까지 마구 채취하지 않았습니까? 또 모피 옷을 입자고 동물들을 죽이고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살지 않습니까? 물론 미국에 와서 몸보신으로 희생되는 동물들이나 식물들 이야기를 별로 못들어 본 것같습니다 이런 이기주의가 우리들의 삶가운데서도 무의식적으로 나타나지 않나요? 이번에 이 청포도 사건으로 내 자신이 내모든 것을 자기 중심이고 누구를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자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깜짝 놀랬습니다. 포도 몇송이 누가 먹었든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식구들에게 돌려진 것을 마치 큰 보물이라도 잃어버린 것처럼 아쉬워 햇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7-8)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은 의롭고 대단할 때 사랑하신 것이 아니며 우리가 하나님 사랑을 받기에 합당치 않고, 하나님 앞에 쓸모없을 때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셨습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그 사랑은 무조건적 사랑이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어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등 돌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며, 내 고집대로 살며,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은 나를 내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시고 나를 무조건 받아 주신 사랑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되인 되었을 때 원수 된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이든 죄를 인정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죄인인 인류는 심판받아야 했고, 멸망 받아야했고, 벌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죄를 해결하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의 죄를 해결하시는 방법이란 죄인의 죄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구제 불능의 죄인들을 위해 그의 독생자를 내놓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 값을 독생자를 통해 지불하셨던 것입니다. 그래 하나님은 이 땅에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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